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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근 Jae Lee

다시 또 부르는 '4월의 노래'…

1988년 4월의 어느 날, 고등학생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던 그 시절, 제식훈련과 총검술을 가르치시던 교련 선생님은 휴식을 외치셨다. 잠시 후, 급우들 앞으로 불려 나가 부르게 된 '4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생명의 등불로, 빛나는 꿈의 계절로 돌아온 4월은 내게 그렇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빛나던 시간의 또 다른 현실은 노랫말과는 사뭇 달랐다. 운동장 한구석에 철퍼덕 주저앉아 땀에 젖은 교련복에, 어깨에 걸친 모조 총의 무게를 견디던 앳된 얼굴의 그때 그 고딩들에게 4월의 노래는 뜬금없는 낭만(?), 지루함을 넘어선 잔인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는 수업 종소리는 들리지 않고 …


그의 작품 '황무지'에서 T.S.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했다. 위대한 인류의 세기를 기대했건만, 20세기의 서막은 전례 없던 살상으로 얼룩진 전쟁과 함께 문명의 황폐함, 정신적 공허가 확인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폐허 속에도 여전히 찾아와 잠든 땅을 뒤흔드는 생명의 기운을 '잔인하다' 말하는 엘리엇의 역설은 오늘에도 그 울림을 더해주는데…, 견디기 힘든 절망에도 포기할 수 없는 생명의 기운과 함께 4월은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의 부활의 사건이 대척점에 서 있는 사순절을 지내며, 믿는 이들에게 전해오는 4월의 그 '잔인함'이란 깊이 생각해볼 함축을 던져주는데…

15세기 말 완성된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 이 작품 속에는 엉뚱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예수의 제자가 등장한다. 스승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 다빈치가 묘사한 유다는 자신 앞에 놓인 작은 소금 통을 엎어버리고, 대신 스승을 팔고 받은 보상금 주머니를 당당히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며, 오직 세상을 바꿀 힘은 재물과 폭력적 저항이라는 열심당 유다의 마음은 그렇게 그의 스승뿐 아니라 다빈치에게도 들통나 버린 것이었다. 재물과 무력으로 정복해 가는 세상…

그 유다의 마음이 오늘의 우리네 삶 속에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듯싶다. 아울러, 온통 No. 1이 되기 위해 뒤틀어진 세상 속에서 혹시나 교회마저 재물과 힘의 논리를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엎어져 버린 소금 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돈주머니에 온통 마음을 쏟는 것은 아닌지… 한편, 그래서 더욱 엘리엇의 싯구절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더욱 잔인한 4월을 기대하면서…, '황무지'에 불어올 그 생명의 기운마냥, 그리스도가 성취한 '다시 삶'의 기운이 가득한 그 날을 기다리면서…, 또 다시 '4월의 노래'를 불러보며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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