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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근 Jae Lee

그래서 배우고 다시 또 배운다…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와 폴 세잔 (Paul Cezanne, 1839-1906)…, 현대 미술의 출발인 이들의 작품세계는 늘 하나의 사물로부터 다양한 색감과 시선을 만들고자 했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감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고, 세잔의 정물화는 모자이크 양식을 통해 다양한 단편들의 조합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입체성을 향한 갈망은 우리가 익히 아는 파블로 피카소 (1881-1973)에게서 완성되어진다. 그의 작품 "도라 마르의 초상"이 보여 주듯, 피카소는 2 차원 평면 위에 3차원의 공간미를 창조하며, 하나의 초상 속에 정면과 측면의 얼굴을 동시에 담아내는 소위 입체주의를 표방하는데…



회화를 향한 피카소의 시선은 종종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다양한 시선과 입체적 표현들… 유일한 신앙고백의 대상을 향해 획일화된 증언이 아닌, 오히려 서로 다른 고백과 진술들은 때로 우리네 신앙을 고민하게 하고 심지어 갈등하게도 만들지만, 그 영적 번민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만큼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풍성함은 그 입체감을 더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믿음의 길은 확신과 불안을 오가며 흡사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여정으로 우리 앞에 놓여지는데…

오래전 조상, "내 인생이 참 험한 세월이었다." 고백했던 야곱의 그 마음을 담아내서일까? 숄렘 알레이헴 (Sholem Aleichem, 1850-1916)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위태롭기만 한 우리네 삶을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린 주자에 유비하고 있다. 자신들의 삶도 그러하다는 듯, 여전히 뉴욕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관람객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전하는 가르침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평생 살아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평생 해왔던 일이 살아가는 것이었건만, 여전히 삶은 알다가도 모를 경외와 질문의 대상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살아감의 여정과 뗄 수 없는 것이 믿음이란 점에서, 사실 믿음 또한 종종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걸 솔직히 고백하게 된다. 몇 대를 거쳐 오랜 세월 일구어왔든, 갑작스레 찾아온 거듭남의 은혜로 시작됐든, 믿음은 여전히 묻고 기다리고 다시 묻고 기다려야 할 신비로움의 도상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마치 하늘의 은혜를 갈망하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 속에 광야 길을 헤쳐 갔던 옛적 히브리 공동체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다시금 안개와도 같은 길을 나서며 다짐해야 할 것은 알다가도 모를 삶과 믿음이기에, 그래서 더욱 배우고 다시 또 배우는 것이라는... 괜한 사족이겠으나, 음력설이 허락한 또 한 번의 새해와 그 다짐의 기회를 재활용하며, 한 번 더 되뇌어 본다. 그래서 배우고 다시 또 배워야겠다는 믿음의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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